원주변씨간재종택 안동 서후면 문화,유적
잔잔한 바람이 논 사이를 스치던 늦봄 오후, 안동 서후면의 원주변씨 간재종택을 찾았습니다. 마을 어귀를 지나자 낮은 담장과 기와지붕이 고요히 이어졌고, 햇살이 흙담에 부딪혀 따뜻한 빛을 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자 오래된 회화나무 그늘 아래로 작은 연못이 보였고, 물 위로 나뭇잎이 천천히 떨어졌습니다. 종택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단정하고 묵직한 기운을 품고 있었습니다. 나무문을 여는 순간, 안에서 흙길의 촉감이 느껴졌고, 대청마루를 스치는 바람이 은은한 나무향을 실어왔습니다. 한 세기를 넘어 이어져온 공간이지만, 생활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오랜 집이 가진 시간의 깊이가 천천히 마음을 감쌌습니다.
1. 서후면 들판 끝에서 마주한 종택
간재종택은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동 시내에서 차로 약 25분 거리로, 낙동강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면 ‘간재종택’ 표지판이 나타납니다.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원주변씨 간재종택 주차장’으로 설정하면 마을 앞 공터로 안내됩니다. 주차 후 좁은 골목길을 도보로 3분 정도 걸으면 종택의 솟을대문이 보입니다. 길가에는 돌담이 이어져 있고, 그 위로 감나무 가지가 살짝 드리워져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흙먼지가 가볍게 일고, 새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마을의 풍경이 차분해 마음이 절로 느려졌습니다. 강변의 평야와 어우러진 종택의 위치가 유난히 조화로웠습니다. 자연과 사람, 집이 함께 숨 쉬는 자리였습니다.
2. 간재종택의 건축과 구성
간재종택은 조선 후기 학자 간재 전우(艮齋 田愚, 1841~1922) 선생의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온 고택입니다. 솟을대문을 지나면 넓은 마당이 펼쳐지고, 왼편에는 사랑채, 오른편에는 안채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사랑채는 ㄱ자 형태로 마루가 넓게 뻗어 있고, 기둥의 나무결이 굵고 단단했습니다. 마루에 앉으면 바람이 서까래 사이로 통하며 시원하게 드나듭니다. 안채는 조금 안쪽에 자리해 가족의 생활공간으로 쓰였으며, 담장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기와지붕은 오랜 세월에 빛이 바래 은은한 회색빛을 띠었고, 그 위로 비둘기 한 쌍이 날아올랐습니다. 단정하면서도 생활의 흔적이 느껴지는 구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3. 간재 전우 선생의 학문과 정신
간재 전우 선생은 구한말의 대표적 유학자로, 조선 유교사상과 의리정신을 지켜온 학자입니다. 그는 성리학의 본질을 지키며, 시대의 혼란 속에서도 도덕과 예를 중시했습니다. 종택의 사랑채 벽면에는 ‘간재집’의 일부 구절이 걸려 있었고, “배움은 마음을 밝히는 일이며, 예는 그 마음을 다스리는 길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종택 안에는 그의 친필 현판과 후손들이 보존한 제향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학문뿐 아니라 제자 양성에도 힘썼던 그의 삶의 흔적이 곳곳에 스며 있었습니다. 안내문에는 “진정한 학문은 세상과 더불어 사는 도리에서 시작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집이 곧 학문이고, 생활이 곧 수행이었던 공간이었습니다.
4. 정갈하게 보존된 고택의 풍경
종택의 마당은 고르게 다져져 있었고, 담장 아래에는 작은 들꽃들이 줄지어 피어 있었습니다. 사랑채 마루 옆에는 장독대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으며, 햇살이 항아리 뚜껑 위에 반사되어 은은히 빛났습니다. 안채 뒤편에는 작은 우물이 남아 있어 옛 생활의 흔적을 보여주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대문이 살짝 흔들리며 나무 냄새가 났고, 처마 끝에서는 풍경이 맑은 소리를 냈습니다. 안내판에는 QR코드가 부착되어 있어 간재종택의 역사와 전우 선생의 생애를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관리가 잘 되어 있어 낡음이 아닌 단아함이 느껴졌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원형이 훼손되지 않은 고택의 품격이 인상 깊었습니다.
5. 인근 유적과 함께 즐기는 동선
간재종택을 둘러본 뒤에는 차로 10분 거리의 ‘도산서원’을 방문했습니다. 퇴계 이황의 학문 정신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유교 유적지로, 간재종택과 함께 학문의 맥을 잇는 장소입니다. 이어서 ‘온혜선비마을’로 이동해 전통 한옥이 즐비한 마을길을 산책했습니다. 점심은 서후면 중심의 ‘안동한우식당’에서 한우불고기를 맛보며 여유를 즐겼습니다. 오후에는 ‘안동호 전망대’에 올라 낙동강의 굽이진 풍경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종택의 차분한 분위기와 서원의 장엄함, 그리고 자연의 여유가 조화를 이루는 일정이었습니다. 안동의 학문과 전통이 살아 있는 여정으로 추천할 만했습니다.
6. 방문 전 알아두면 좋은 점
간재종택은 일부 구역이 사유지로 관리되고 있으므로, 방문 시 조용히 관람하는 것이 좋습니다. 입장료는 없으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방됩니다. 제향일에는 일부 구역 출입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마당이 흙바닥이라 비가 온 뒤에는 약간 미끄럽기 때문에 운동화를 착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진 촬영은 외부에서는 가능하지만, 내부는 삼가야 합니다. 봄과 가을에는 주변 산세가 아름답고, 햇살이 기와 위로 스며드는 오전 시간이 관람하기에 가장 좋습니다. 주변에 편의시설이 많지 않으므로 생수와 간단한 간식을 미리 준비하면 편리합니다. 평일 오전에는 인적이 드물어 한층 고요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무리
안동 서후면의 원주변씨 간재종택은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공간이었습니다. 화려한 복원 대신 세월의 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오히려 더 진한 품격이 느껴졌습니다. 마루에 앉아 바람이 드나드는 소리를 듣다 보면, 간재 전우 선생의 곧은 마음과 학문적 기개가 자연스레 전해졌습니다. 흙과 나무, 바람이 어우러진 이 집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한 시대의 정신이 머무는 공간이었습니다. 다음에는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 때 다시 찾아, 담장 너머로 흘러내리는 빛과 그림자를 보고 싶습니다. 조선 선비의 청렴한 기운이 여전히 살아 있는, 안동의 진정한 문화유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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